독서.
어떤 사람에게는 거창한 취미 생활이며 한 해의 목표가 되는 과업이 되기도 하며, 어떤 사람에겐 구태여 이름을 붙일 필요를 모르겠는 일상적인 활동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나는 언제나 후자로 지내온 꽤 오래된 활자 사랑꾼이고, 실은 꼭 책이 아니더라도 읽을거리 자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언제나 서점 사이트에는 읽고 싶은, 사고 싶은 책들로 쌓여있고, 월급이 들어올때면 만화책과 함께 나의 소비에 한 몫하고 있을 정도니까.
업무 관련 아티클이나 경험 공유 글들을 즐겁게 읽기도 하고, 서핏과 브런치, 여러 회사들의 팀 블로그도 닳을 정도로 읽었다. 매일 오는 뉴스레터가 가끔 아쉬울 정도로 글에 완전 빠져 있던 경험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즈음에 남들보다 일찍 소설책 읽기를 좋아하게 된 것이 나의 활자 사랑에 불을 지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왕자를 읽으며 책장을 신나게 넘기며 속독하는 어린아이는 커서 글자로 되어있는 읽을거리는 대부분 좋아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남들이 정보를 찾을 때 가장 익숙하게 여기는 유튜브는 내게는 답답하기 그지 없는 검색수단이었다.
언제나 궁금한게 있으면 검색결과 페이지를 끝까지 읽어보던 나에게, 영상의 시대는 아주 느리고 답답하게 흘러간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글 읽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걸 알게 되었다.
프로덕트 디자인에 발을 딛게 되며 그 사실은 조금 더 공고하게 다가왔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에게 활자는 매력적인 형태가 아닌 것이었다.
그렇게 읽는 것을 좋아하더라도 사람들이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 물어 봤을 때 나는 섣불리 독서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내가 활자라는 형태가 매력적이지 않다는걸 알게된만큼 사람들이 독서를 꽤 진지하게 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던 탓이었다.
많은 분들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독후감을 올리고는 한다.
책에서 주는 주제성, 메세지, 나의 인사이트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하나의 글로 만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의 책읽기를 독서라고 해도 되나 싶어졌다.
사회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것을 내가 무조건 만족 시켜줄 의무는 없으나,
내가 받아들이는 정의와 사회적 정의가 다르다면 앞서서 자랑하고 싶지도 않은 심정이었다.
나는 거진 대부분의 글을 sns 피드를 읽는 것 과 크게 다르지 않는 무게감으로 읽는다,
책을 펼치면서도 “이 책에서 나의 성장을 위한 모든 지식을 알차게 꼼꼼히 공부하겠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가끔 너무 흥미 본위로 책을 봤으니 디자인에 도움되는 주제의 책도 펼쳐야겠다 하면 몰라도.
책을 그냥 읽는다, 오늘 읽은 인스타그램 보다야 일관된 주제를 기대한다.
읽고 나서 재미있거나 인상 깊었다면 여러 번 읽을 것이고 그럼 자연스럽게 공부가 되거나 말거나 하겠다 하는 정도의 무게감.
책에서 좋았던 점이나 시사할 점이 있다면 혼자서 곱씹다 친구들에게 웃으며 이야기거리로 풀고 마는 정도의 가벼움으로 읽는다.
사실 그래서 나는 독서를 취미로 말해도 되나 싶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필독도서를 피해서 읽으며 독후감은 무시하고 좋았던 문장과 책에 대해서 수다 떨던 습관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 수 있다.
책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독후감 모임이나 독서 토론 모임을 추천하는 분들께 꽤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나를 생각해주신 것이 무색하게 난 책의 화자가 말하려 하는 주제에 대해 대화하는 것보다 내가 받아들이고 시사한 점에 대해 말하는게 좋다. 가볍게 받아들이고 깊게 생각하고 싶다.
서두에서 말한 독서가 과업인 분들이 계신다면 이렇게 읽어도 책 읽기라는는 그런 가벼움을 전달하고 싶었다.
요즘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이유는 경쟁 상대가 넷플릭스나 유튜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봤었는데.
그렇다면 책도 딱 그 정도의 가벼움으로 보면 그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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